프랑스(여름,자유여행)/파리

오르센!! (풍부한 이야기가 넘쳐나는 그곳!)

언제나봄 본계 2011. 7. 11. 22:41

전날 밤 드골공항에 도착해서 우여곡절 끝에 리무진 버스(프랑스에서는 버스라는 단어를 안씁니다. 리무진 버스를 les car로 발음하셔야 알아듣습니다.)

* 참고 : 드골공항 리무진 버스는 두가지입니다 - 몽파르나스(리옹행)와 오페라가행. 요금은 왕복 27유로입니다.

리무진 버스 말고 지하철을 이용해 숙소로 이동하시는 방법이 있으나 몹시 복잡하고 밤에는 위험할 수 있으므로, 저는 리무진을 타고 시내로 이동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여행사에서는 저렴하게 가는 방법으로 셔틀을 타서, 지하철역으로 간후 다시 북역으로 가서 숙소로 이동하는 방법을 제시하는데요, 이 방법은 난해하고 어려습니다. 그냥 리무진 버스 타십시오^^

 

리용 행을 타고 리옹역에 내린후에, 그곳에서 택시를 탔습니다. 5분 거리라던 키리어드 베르시 호텔을 10분쯤 걸려 갔는데요, 으악, 택시비 바가지를 썼습니다. 뒷칸에 짐을 실은 팁을 요구하며 무려 10유로.. 5유로면 된다고 들었는데..ㅜㅜ

(*참고 : 택시에 타시는 경우, 짐을 가지고 승차하시면 팁을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뒷좌석 트렁크를 열어 따로 실으시면 추가 팁을 가방 개당 따로 받습니다.)

 

무튼 편하게 호텔에 도착했습니다만, 영국보다는 호텔이 작더군요. 특히 샤워부스에서 여기저기 멍이들었답니다.^^; 너무 좁아서 부딪쳐서요.

하지만, 디자인이 매우 다이나믹하고, 깔끔합니다.

 

다음날, 오전 6시30분 기상해서 1층 조식뷔페에 내려간 순간 눈이 황홀해집니다.

으아. 영국의 식사와 어쩜 이렇게 다른지.

그 맛의 탁월함은 둘째치고, 계란요리, 소시지 구이, 6가지의 빵종류, 10가지 이상의 과일과, 주스, 차, 커피 등등..

무려 1시간을 쉬지 않고 먹어봅니다. 간만에 포식했습니다. (사진촬영은 예의상 하지 않았습니다. 직접 가서 맛을 보시면 황홀해집니다.)

 

오전8시, 인근 쌩떼밀리옹 메트로(지하철)역에서 하루종일 사용할 수 있는 모빌리스(6.1유로) 티켓을 끊습니다.

우리나라지하철 전철표와 똑같이 생겼는데요, 다만 동전에 약하므로 함께 소지하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 참고 : 모빌리스 교통권은 하루종일 버스와 지하철을 여러번 탑승할 수 있는 탑승권이며, 이 탑승권으로 몽마르뜨 언덕 케이블 탑승도 가능합니다. 원래 현지인만 사용할 수 있으나, 관광객도 사용해도 무방합니다.)

 

파리 지하철은.. 생각만큼 냄새가 심하지는 않지만, 예상한것만큼 지저분합니다.ㅋㅋ

(* 참고 : 파리 지하철 문은 자동이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고리를 위로 살짝 들어올리면 열림으로 당황하지 마세요^^)

 

일단 3정거장 지나니, 앞으로 자주보게될 환승역 샤틀렛 역이군요.

이곳에서 4호선에 환승후- 다시 2정거장 지나서 생 미셀역에 하차합니다.

그리고 3번 출구에서 낯선 일행을 기다립니다.

자전거 나라의 하룻동안 '오르센 투어'를 신청했거든요^^

비가 엄청나게 내렸지만 한 분도 빠짐없이 투어에 모였습니다.

그들과 함께 오르센 미술관으로 향합니다. 오르센 미술관은 튈르리 정원 센강 건너편에 위치했으며 메트로(지하철)12번 솔페리노, 또는 rer c선 오르세이역에서 하차하시면 됩니다.

(*참고 : 파리 지하철은 크게 메트로와 rer선으로 구분됩니다. 우리나라 지하철 메트로와 국철로 구분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일단 현지가이드분에게 각자 수신기를 받아 귀에 이어폰을 꽂습니다. 그러면 현지 가이드분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잘 들립니다.

그리고 현지가이분의 목소리를 따라서 지하철을 다시 탑니다.

 

자, 오르센 입구에 벌써부터 사람들이 모여 있군요.

일단 바로 앞의 커피집에 모여서 (아메리카노= 알롱쥐에, 로 발음하신후 주문하시고, 에스프레소 커피의 맛은 일품인 곳입니다. 커피가격은 대략 2유로)들어가기전 주의사항 듣습니다. 이곳은 단체관람이 불가해서 개별관람을 해야하며, 사진촬영하다가 경비원에게 끌려나올 수 있다네요.ㅋ (입장료는 8유로이구요, 일요일은 5.5유로만 받습니다. 그외 특별전이 있는 경우 따로 요금을 더 지불하셔야 합니다. 제가 간 날은 마네특별전이 있었습니다.)

 

오르센 미술관은 원래 1900년대에 만들어진 기차역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차길이는 길어지고 플랫폼이 짧아진 오르세역은 1939년 폐쇄될 위기에 처합니다. 이후, 임시경매소, 촬영장으로 이용되었다가 1977년 미술관으로 개조작업을 시작해 1986년 개관하게 됩니다.

오르센 미술관의 가장 아름다운 특징은 32미터의 높이와 140미터의 길이를 자랑하는 한가운데 뻥 뚫린 메인 홀인데요, 3층까지 뻥 뚫린 천장의 유리돔으로 쏟아지는 채광덕분에 그림의 가치가 더욱 아름답게 빛을 발하죠.

 

오르세 미술관은 1층~3층까지 전시품이 있구요, 고갱, 르느와르, 고흐, 마네, 드가, 세잔 등 인상파 거장들의 작품이 모여있어, '인상파 미술관'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습니다.

매주 목요일밤은  밤9시45분까지 야간 개관을 하는데요,

3층의 카페나, 2층의 레스토랑에서 야경을 함께 즐기시는것도 좋은방법이 될 듯 싶군요.

 

지, 그럼 내부 전시실의 그림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아래 그림들은 실제 오르센에서 촬영한 사진이 아니라 인터넷 검색을 통해 퍼온 자료임을 밝힙니다.)

먼저 마네입니다.

바리비종파(사실적인 풍경과 낭문주의적 자연환경을 그리는 영국의 화가들과는 달리 작은 마을에서, 자연을 풍경으로 삼아 그 안에 인간의 정신을 담는 그림파)인 에두아르 마네(1831~1883)는 인상파의 개척자로 사실주의적인 그림을 그리되 색채의 배치를 중요시한 화가입니다.

법률인이었던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였지만, 그는 법률가가 되고 싶지 않아서 군대에 지원합니다.

아니 사실은 화가가 되는게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해군 시험에 번번이 떨어지죠. 그리고 가난한 중에 화가의 꿈을 버리지 못해 결국 퀴트르 화실에 들어가 수습생활을 시작합니다.

당시 화실을 운영하던 선생은 마네를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는군요.ㅜㅜ

그런점에서 마네는 타고난 천재라기 보다는 노력을 열심히 한 성실파 화가 같습니다.

 

이후 마네는 보들레르의 추천으로 상류사회의 풍경화를 제안받아 그림을 그립니다. 그러면서 상류사회의 일면을 엿보게 되죠.

그 와중에 탄생한 것이 문제작 '풀밭위의 점심 식사'입니다.

원제는 '목욕'인데요, 당시 이 그림이 사회에 몰고온 파장은 어마어마했답니다.

 

마네는 이 작품을 1863년 사롱전에 <목욕>이라는 제목으로 제출하지만 낙선하고 맙니다.

그림을 심사하신 상류층 어른신들의 심사가 뒤틀린게죠.

누드화에다가, 상류층 신사들이 한 여인을 두고 조롱하는 듯 보였으니까요.

그런데, 당시 풍습은 낙선한 그림을 따로 모아 정부가 낙선전을 열어줬다는군요.

하여 마네의 작품은 대중들에게 공개되고 맙니다.

그러자, 대중들의 거센 비판이 일어납니다.

천한 여자가 부끄러운 줄 모르고 발가벗은채 건방지게 앉아있다. 그것도 정장을 한 두 남자 사이에서. 도대체 이런 형편없는 무가치한 그림을 그린 화가의 의도를 알수가 없다...

게다가 여인의 몸매도 엉망이다, 드러난 똥배와 무다리에.. 온갖 모욕적인 비판이 쏟아졌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마네는 이 목욕이라는 그림을 통해서 프랑스 사회의 가식적인 이중적 성향을 비판하고 싶었던 겁니다.

여성은 벗은것에 대한 어떤 가식도 없이 당당하고 거칠게 자신을 드러내고 있지만, 남성들은 옷을 입은채 여성을 힐끔거리는 듯 보이지 않습니까? ^^

 

혹평을 당한 마네는 화가 납니다.

자신의 누드화는 논거의 가치조차 없는 천박한 그림이고, 여성을 신격화 해 표현한 비너스의 탄생은 대작이라고들 말하는 당시 사회가 편협하고 오만하게 보였던 거죠.

<알레산드르 카바넬의 비너스의 탄생>

 

마네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다시한번 누드화를 시도합니다.

자신의 그림을 천박하다고 격하했던 당시 상류층을 겨냥해  2년만에 또다른 야심작을 내놓게 된거죠.

바로  올랭비아, 라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작품을 심사하게 된 심사위원들은 움찔 놀랍니다.

마네의 애인이기도 했던 올랭비아는 당시 모델이자 창녀인데요, 아래에 놓인 검은 고양이를 통해, 이 그림이 직업여성임을 단박에 알아차릴수는 있지만, 만약 직업여성이라고 비난한다면, 자신이 그곳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대중에게 공개해야 될 상황이 된 것이죠.

그리하여 결국 심사위원들은 비판을 꾹 참습니다.

아.. 이것을 낙선시키자니, 직업여성을 그렸다고 비난해야하는데, 그러자면 자신의 추잡한 일이 들통나고,

당선시키자니 창녀를 모델로 한 그림을 격상시키는 결과이고...

딜레마에 빠졌던 심사위원들은 자신의 명예를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을 당선시키고 맙니다.

그런데, 이 그림이 갤러리에 걸리고 대중에게 공개되자 또 한바탕 이슈가 되어버리고 대중들의 비판이 거세집니다.

심지어 구경을 온 한 노인들은 그림에 오물을 던지기까지 하죠. 결국 이 그림은 갤러리 천장에 다시 걸리게 되는데요, 그래야 사람들이 투척한 오물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다들 마네의 그림을 신랄하게 비판하지만, 당시의 문인 에밀졸라는 그를 옹호합니다.

사실, 마네가 상류인사들을 직업여성에게 소개했다고 편까지 들어줍니다.

그게 고마운 마네는 에밀졸라에게 그림을 선물했다고 합니다.^^


마네의 <올랭비아의 고양이>

 

세월이 흐르면서 마네도 지쳤나봅니다. 더이상 누드는 그리지 않고 사실적이고 서민적인 여성들을 섬세하게 담아내기 시작합니다.

<나나>

그중에서 제가  오르센에서 본 마네의 그림중 아주 인상깊은 작품이 바로 아래의 그림입니다.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

말년에 그려진 대작,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의 감상 포인트는 바로 이 바텐더 여인의 뒤에 걸린 거울입니다.
거울에 비쳐진 모자 쓴 신사뿐만이 아니라, 술을 파는 클럽의 모든 공간을 밝은 색채로 그려주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샹들리애와 반사된 불빛이 고스란히 보이시죠? ^^

당시에 튜브물감과 사진기가 발명되면서 빛을 중요시한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이 더욱 발전하게 된거죠^^

 

그런데 이 그림이 더욱 매력적인 이유는..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주인공인 바텐더 아가씨의 멍때리는 모습입니다.^^

거울속에 투영된 클럽은 활기차고 소란하고, 소비문화가 팽배한데, 바텐더 아가씨는 다소 지친 표정으로 딴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는 언제끝나나.. 마치 혼자서 다른 공간에 서있는 듯한 착각이 들면서 그녀의 감정이 고스란히 제게 전달되는 것 같았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마네와 이름이 늘 헛갈리는 모네편입니다.^^

모네가 마네를 몹시 존경해서 '마네의 그림'을 오마주했다는군요.

그 작품부터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마네는 모네를 처음에 싫어했습니다.

사람들이 늘 자신과 모네를 헛갈려했거든요.

하지만 모네는 마네를 몹시 존경했답니다.

그래서 마네의 '목욕'을 오마주해서 '풀밭위의 점심식사'라는 작품을 완성, 심혈을 기울여 다듬은 후 공식 살롱전에 출품하죠.

그런데 여인의 누드화는 점잖게 바꿨답니다.^^ 아마 사회적 논란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나봅니다.

대신 느긋하게 야외점심을 즐기는 신사와 숙녀 모습을 담아 우아함과 정숙함을 살립니다.

 

마네의 '점심'은 다소 거칠지만, 모네는 풀밭에 식탁보를 까는 등, 섬세하게 정갈한 디테일을 살려, 편안함을 이끕니다. 
야외드레스를 곱게 차려입은 여성도 단아하고 우아하게 보이고, 신사들은 그녀들을 전혀 조롱할 의사가 없어보이죠.^^

모네의 그림은 이렇듯 모범적이고 정식인 구성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림속 서있는 남자는 모네의 절친이자 후원자인 동료화가 프레데리크 바지유이고, 앉아 있는 남자는 사실주의자 쿠르베로 보입니다.

 

그런데 가난과 빈곤에 찌들었던 모네는 결국 이 작품을 집주인에게 빼앗깁니다.

월세가 밀렸었거든요. 몇년후 그림을 다시 돌려받지만, 무심한 집주인이 엉망으로 보관해서 곰팡이가 덕지덕지 피어있었답니다.

(으이구.. 눈먼 인간 같으니.ㅜㅜ)

그런데도 모네는 얼굴한번 찌푸리지 않았다는군요.

모네는 가난했지만 사교적이고 까다롭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인상파 거장들, 바지유, 드가, 르느와르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합니다. 까다롭고 예민했던 마네조차도 자신의 그림을 오마주하며 존경을 표해온 모네에게 감동을 받아, '목욕'이라는 작품의 제목을 바꿉니다.

바로 모네의 제목 그대로 갖다가 쓰게 되는거죠.

하여, 마네의 '목욕' 역시도 '풀밭위의 점심식사'로 바뀌게 된겁니다^^

 

모네는 단연 인상파 화가들중 최고의 화가로 인정받았습니다. 당대 최고의 화가 세잔도, 베스트 오프 베스트는 진정 모네였다고 격찬했죠.

그 까다롭던 마네도 모네의 화실을 모델로 삼아 그림을 그렸답니다.

 

모네의 인품은 마네의 사후에도 드러납니다.

마네의 올랭비아가 경매장에서 팔려 미국으로 가게될 것을 염려한 모네는 자신의 개인재산을 털어 구입후에 이 작품을 프랑스에 기증합니다.

사실, 제가 오르센 미술관에서 마네의 주옥같은 그림들을 볼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이후에도 루브르에 마네의 작품을 귀속시키려던 모네의 피나는 노력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라고 하는군요^^

빛의 화가 모네.. 제가 제일 사랑하는 인상주의 화가입니다. (모네에 대한 이야기는 런던편 테이트 모던에도 올렸습니다.^^)

그의 유명한 명작 인상해돋이와 함께 이야기를 계속 적어봅니다.

 

<작품명 : 인상, 해돋이>

 

모네는 멀리서 볼때와 가까이 볼때의 차이, 시간에 따라 빛의 달라짐으로 인해 달라지는 자연의 모습을 담으려고 주력했습니다.

그의 작품 수련도 같은 장소에서 여러시간때에 그리면서 무려 250여 점을 남겼다고 테이트 모던 설명에서 적었습니다만..

모네의 이 그림외에도 시간에 따라 변하는 성당의 모습을 하루종일 몇장씩 그린 경우도 있었습니다.

당시 비평가들은 이 그림이 무성의하게 보였던 모양입니다. 오로지 인상뿐이라고 혹평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림을 다시한번 가만히 들여다보십시오.

모네의 가슴을 사로잡은, 막 떠오르는 저 붉은 해, 그것이 그의 눈과 가슴을 꽉 채우는 그 순간의 강렬함이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시간에따라 빛이 달라지고, 그림이 달라진다는 것을 그가 알고 표현하기까지 똑같은 장면을 수십장 그렸을 그의 마음..

한가지에 매달리되 다양함을 인정하는 열린 마음, 모네의 성품을 그대로 반영하는 듯 싶습니다. 

 

오늘날 오르센에 전시된 4개의 그림으로 모네는 큰 성공을 거둡니다만 그 전에 가난에 찌들었던 그의 아내, 까미유는 산후조리중에 절명합니다. 그녀의 나이 서른 아홉... 모네는 죽어가는 까미유를 지켜보면서.. 그림을 그립니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그녀의 모습을 포착하고 싶었던 겁니다.

열여덟에 모네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 두 사람..

죽어가면서까지 모네의 모델이 되어준, 영원한 모네의 모델 까미유..

모네의 유명한 그림중에는 초록우산을 쓴 여인, 이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보시는 순간 앗! 이거다! 하실 겁니다.

세찬 바람이 부는 풀밭위에 멀찍이 선 검은 머리의 여인.. 바로 그 아름다운 그림의 모델이 까미유였습니다.

(* 참고 : 영화 까미유 끌로델, 이라는 영화를 한번 보셔도 좋을듯 싶군요)

 

오르센 내부투어를 하면서 사실 제일 많이 만났던 거장은 르느와르와 드가였습니다.

가난했지만 파티등의 행복한 소재만을 그림으로 그렸던 르느와르와 부유해서 자신의 개인 사진기를 가지고 다니며, 발레구경을 다니던 드가까지, 정말 인상파 거장들의 작품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 어느 한 그림 앞에 멈춰서서 눈물을 뚝. 뚝. 흘렸습니다.

바로, 이 작품입니다.

 

고흐.. 그에 대해 말해 더 무엇하겠습니다. 지독한 가난과 빈곤때문에 모델을 구할 수 없어서, 자신을 스스로 모델삼아 자화상을 그렸던 그.

스스로의 정신을 주체하지 못해 귀를 잘라내야했던 그.

일평생 단 한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했던 그.

동생 테오의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야했고, 그 치료비가 없어서 가세도 박사(그림)에게 초상화를 주고, 치료비를 구걸해야했던 그..

하지만 전 그가 남긴 말들이 참 좋습니다.

'나는 성당을 그리느니, 인간을 그리겠다. 성당 안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인간의 눈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자..

이제 오르센 투어를 마감하려고 합니다.

오르센 투어에 있는 그 많은 그림들과 아름다운 작품을 조잡한 제 필설로 풀었다는게 부끄럽네요.

그림은.. 말로 설명해서 아는 지식이 아니라, 그 앞에 서서 직관적으로 느끼는 것이라고 하죠.

오르센에 가시면, 너무나 많은 인파와 구경꾼들 틈에서 그림을 감상할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럴때에는 3층의 조그만 틈에 걸린 작은 액자 그림들을 홀로 조용히 감상해보시기 바랍니다.

분명, 자신에게 다가오는 각별하고도 인상적인 추억을 만드실 수 있을 겁니다.^^

 

 

아참! 고흐와 쌍벽을 이루는 후기 인상파의 대가 '고갱'에 대해 조금만 추가 언급하겠습니다.^^

혹시 섬머싯 모옴의 '달과 6펜스'라는 작품을 읽으셨는지요?

이 작품을 읽어보시면 그림을 어떻게 봐야할지, 감상이라는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왜 화가들이 꿈꾸고 절망하고 마침내 탄생하는지에 대한 아름다운 이유를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달과 6펜스라는 작품은 후기 인상파 화가 고갱을 모델로 하면서, 잭 스트렌드라는 천재화가를 등장시킵니다.

일개 공인중개사였던 주인공과 실제 공인중개사였던 고갱,

주인공이 가족을 버리고 그림을 그리러 떠나버리는 이야기와 고갱이 가난때문에 가족에게 버림받았던 부분,

주인공이 타히티에 열정적 그림을 남긴점과 고갱이 말년에 타이티에서 현지처녀와 사랑에 빠져 아름다운 타히티 그림을 남긴점,

주인공이 문둥병으로 죽어버린 결말과 고갱이 심장병으로 병사한 부분등..

마치 또 하나의 고갱을 보는 듯 작품은 강렬하고 아름답고, 재미납니다.

화가의 삶... 그 안에 직접 뛰어들어 간 생생한 문체의 매력뿐만 아니라, 이 책을 덮고나면 바로 타히티를 눈앞에서 보는 듯, 몹시 가고 싶어지고 그리워질 겁니다.^^

그만큼, 달과 6펜스는 너무 좋은 책입니다. 미술을 좋아하신다면, 아니 재미난 소설을 읽고싶으시다면 달과 6펜스를 꼭 보십시오.

참고로 달은 이상을 쫓는 주인공을, 6펜스는 세속을 쫓는 조연들을 가리키는 은어입니다.

 

아참, 고갱과 고흐가 절친이었다고 싸움후 헤어진 이야기는 다들 잘 알고 계시죠?

한 작업실에서 2개월만에 격렬한 싸움을 해버린 후,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잘라버리죠.

물론 고갱과의 격렬한 싸움이 원인이었다고 하지만, 사실 압생트라는 술(독이 있는 쑥으로 빚음, 환각증세)이 원인이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요즘 파리에서 파는 압생트는 강렬함이 많이 약화되었다고 하는데요,

이왕 파리에 가시면 압생트를 주문해서 드셔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조금씩, 화가의 삶과 그들의 체취에 접근하면서 그림을 감상하게 된다면 놀라운 공감을 얻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