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위에서 벌어지는 그래비티, 라고 누군가 평했드랬다.
두 사람만으로, 우주를 능가할 인간존재에 대한 고찰을 보였던 그래비티.
이 영화
올 이스 로스트는, 헤아릴 수 없는 망망대해라는 또 다른 우주, 바다에서 벌이는 한 인간의 고독한 사투와 몸부림,
그리고 숭고한 사투에 대한 헤아릴 수 없는 눈물의 명작이다. 시작은 이러하다.
80대를 넘어선 듯 보이는 한 노인이 요트를 타고 여행중이었다. 짙푸른 바다, 따갑게 평화로운 햇살, 그 바다 위 사선에서 그가 우리에게 남긴 유리병 속의 유언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그는 정말 피터지게 노력한다. 정말이지 보는 내내 몇번이나 머리를 끄덕일만큼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이름도 나이도 가족관계도 알 수 없는
한 노인은 '오로지 살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다.
진실하게. 죽음 앞에서 꾸미지 않는다, 거짓말하지 않는다. 오로지 살고자 하는 명쾌하고도 단순한 원리에 의해서,
이 노인은 비명조차 지르지 않은채 견디고 견디어 낸다.
그 어떤 젊음보다도 강인했다.
그의 결혼반지를 통해, 또 다른 한손에 굵게 껴진 의미있음직한 또 하나의 반지를 통해,
우리는 이 노인이 살아오면서 침착하고 다부지게 인생을 견디고 준비해왔다는 것을 하나씩 알게되고,
잔혹하리만치 몰아치는 역경 앞에서 그가 얼마나 철저히 만반의 준비를 하는지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절망적 삶앞에서도 저주 따위는 하지 않는다.
심지어 욕설 한번 내뱉지 않는다. 그는 믿는다. 인간은 살 수 있다. 숙명이나 운명에 굴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그래서 신에게, 하늘에게, 몰아치는 폭우에게 관대하고 상냥했다. 마지막 문 앞에서조차 신이 인간에게 보내는 사랑을 의심하지 않고,
신을 사랑했으리라 짐작된다.
그리고 죽음에 굴하지 않는다. 스스로 포기하지 않으려 다시일어서고 다시 일어서서 지독하게 맞선다.
그는 정말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끝까지 쓰러지지 않았다.
살기위해서, 라는 단순한 욕구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을지라도
중요한 것은 그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거대한 힘, 그것이 신이든, 자연이든, 우주의 기운이든
인간을 얼마나 무력하게 만들며, 그 의지를 짓밟는가. 그리고 결국 인간을 굴종시킨 그 맹렬한 절망앞에서...
우리가 선택하는 것은...
포.기.다.
이 영화는 분명 포.기 에 대한 영화이다.
하지만 보편적 포.기 가 내뿜고 있는 네가티브적 의미를 보기좋게 반전시킨다.
작은 사고. 어쩌면 문제의 시작은 이처럼 작고 견딜만 한 것이었다. 분명히 시작은 견딜 수 있었다.
한가로운 요트의 옆구리가 바다위의 분실물에 의해 작게 구멍이 나고 조금씩 물이 스며들듯이.
이름을 알 수 없는 주인공은 노로의 몸.
잠을 자다가 축축해진 주변에 깜짝 놀라 눈을 뜨고, 배의 파손을 발견한다.
어느덧 무릎까지 차오른 물이지만, 그는 시종일관 침착히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한다.
구멍난 배에 아교를 발라, 임시조각을 붙이고
다 젖은 전기제품과 무전기를 맑은 물로 씻어낸 후, 햇볕에 바짝 말렸다가 다시 조난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신호는 잡히지 않고,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없어 답답하다.
그래도 그는 당황하지 않는다. 심지어 쏟아지는 빗물 앞에서 그는...
오히려 강한 생명의 기운을 느끼고, 자신의 피부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손으로 두드리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샤워를 한다.
그리고 오작동되는 돗대를 고치기 위해, 도르래를 이용해 한참 올라간 후,
파손된 부위를 고쳐놓는다.
그 순간 바람이 그의 머리를 가르고, 폭우를 간직한 듯한 구름이 몰려온다.
노로의 그는, 힘겹지만 천천히 침착하게 도르래를 이용해 내려온 후, 폭우에 만발의 준비를 시작한다. 그는 굴하지 않는다.
어쩌면 인생에서 보다 더 험한 일도 견뎌왔으리라.
바다와 사투를 벌일 준비로, 여유롭게 면도까지 한다. 당당히 맞서기 위해서.
두려움을 떨친 채 키를 잡고
가늠할 수 없는 크기로 다가오는 어둠을 응시한다.
폭. 우.
파손이라는 작은 문제의 시발점에서, 이제 우리는 인생의 중반부쯤 누구나 겪게될, 그리하여 피할 수 없는 폭, 우, 라는 중대한 문제에 접어들게 된다. 그것은 우비로 무장해도 견딜 수 없을만큼 온몸을 파고드는 강한 빗줄기이며, 방향도 균형도 잡을 수 없는 엄청난 뭉치리라. 누구나 겪듯이.
파.손. 이라는 작은 문제는 아교를 발라 임시로 땜질을 할 수도 있는 사소한 시작이었지만,
폭우는 우리를 넉다운 시켜, 중간에 한번쯤 쓰러지게 만든다.
그러나 반드시... 우리는 다시 일어난다.
돗대가 부러지고, 부러진 돗대를 칼라 잘라내어 하나의 큰 손실을 만들지라도
우리는 생에 대한 집념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임시방편으로 막아두었던 작은 파.손은 이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심각한 문제로 되돌아온다.
인생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던, 가장 소중하다고 여겼던 것을 잃을 차례다. 그에게 있어서...
요.트.
그러나 그는 여전히 당당하다. 사그라져가는 배 안으로 들어가, 생존을 위한 준비물을 하나씩 챙기고
곧 침몰할 배 안에서 자신의 상처를 치료해 전열을 가다듬고
집이 무너지는 것을, 위태한 구명보트 안에서 지켜본다. 그는 믿는다.
아직까지 잃은 것은 없다고.
흔적 없이 사라지는 자신의 집을, 먼지 한조각 가라앉을 때까지 응시하지만,
그는 생을 놓지 않는다. 희망을 놓지 않는다.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수동 천문기를 이용해 방향을 잡고, 자신의 위치를 기록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알수 없는 힘은 다시 그를 부스려고 달려든다.
구명보트안에 밀려드는 바닷물... 그리고 다시 다가오는...
폭.우
발판도, 방패도 없는 떠도는 고무보트 안에서 그는 오로지 끈 하나를 부여잡고, 생명을 결코 놓지 않는다.
뒤집어진 보트를 빠져나와
거품이 이는 바다에서 용을 쓰며, 다시 물을 빼내고 보트를 뒤집은 그가, 간신히 보트 위에 올라간 그가...
이제 처음으로 귀를 막는다. 이 바람이, 이 폭우가, 더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괴로운 듯, 무릎을 모으고 두 귀를 막은 채,
그저 꿈이기를, 지나가기를...
그의 희망이 조금씩 무너지는 이 순간에, 갑자기 나의 눈에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린다. 아... 절.망.
무너지기 시작하는 노인의 모습...
물은 먹을 수 없을만큼 썩어버렸고
햇살은 잔인하게 그의 피부를 녹이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다는 것을 그가 인식한 순간
으. 아... 라는 비명을 처음 내지르는 그다. 이토록 살기가 어려운가 이토록.
바다속은 지극히 아름답고, 생명체가 넘치는데
한 인간이 단순히 살고싶다는 이 작은 소망이 이토록 어렵단 말인가.
그래도 그는 놓지 않는다. 다시 가다듬는다. 그는 진실하게 강인하게 다시 삶을 응시한다. 물통을 잘라, 비닐봉지를 덮고, 그 안에 생긴 이슬을 받아 먹으며 살려고, 살려고 기를 쓴다.
거대한 화물선을 보자 조명탄을 흔들며 구조를 요청한다.
하지만 운명은 이다지도 비인간적이고 잔인하다는 말인가. 마치 무인 화물선처럼, 세상의 온갖 재화가 가득 실린 그 배는,
유령선처럼 그의 앞을 유유히 지나가며, 철저히 생명을 외면한다.
살기위해 그가 걸어뒀던 낚시줄에는
상어떼가 몰려와, 그의 먹이를 약탈해간다.
또 하나의 화물선도 무심하게 그를 지나간다. 정말 지독히도, 지독히도...
그 운명의 힘은 그에게 죽으라고, 포기하라고 쉴 새 없이 강요한다. 그래서 그는...
유리병에 편지를 담아 적는다. 그 내용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차마 던지지 못하고, 일순간 병을 응시하는 그의 눈길 속에서,
우리는 편지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그가 유리병을 던지는 순간, 생명에 대한 포기라는 것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는 힘껏 유리병을 던진다.
그리고 마지막 밤.
어선을 보자, 그는 다시 마지막 희망의 불을 지핀다.
유일하게 남은 성냥으로 종이에 불을 붙이고, 자신을 볼 수 있도록 용을 쓴다.
그러나, 화마는 무섭게 변해, 그가 마지막 딛고 있던 구명보트마저 태워 삼킨다.
그의 마지막 희망마저... 그렇게 운명은 철저히 짓밟으며
그에게 포. 기. 라는 항복을 받아내고야 만다.
그제서야 비로소 그는 하늘을 보고...
아... 그는 아무런 말도 없이 한참동안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러나 알 수 있다. 도대체 왜. 도대체 왜, 나에게 이토록 철저히 죽으라 하는 겁니까.
그의 모습이 바다속으로 사라진다.
불타는 보트를 보며 삶을 놓아버리는 그 순간...
가장 밑바닥 절망의 마지막 그 순간에서야 비로소...
희망은 다가오고
그리고 손을 내민다.
포. 기. 하지 말라고...
결코... 포기하지 말라고...
가장 어두운 이 순간이
빛을 발하는 문턱이라고.
그러니 아파하지 말라고.
슬퍼하지 말라고.
한 발만 더.
한 발만 더.
그 숭고한 사투를 멈추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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