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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리한 감각은 예리한 관찰을 선행조건으로 한다.

언제나봄 본계 2014. 2. 5. 23:14

감각과 문장미

 

바람이 몹시 차다 - 이것은 설명이다.

바람이 칼날처럼 뺨을 저민다 - 이것은 감각이다. 어떻게 차다는 표출이다.

 

소리가 몹시 컸다 - 이것은 설명이다.

소리가 쾅 터지자 귀가 한참이나 멍멍했다 - 이것은 감각이다, 소리가 어떻게 컸다는 표출이다.

 

석류꽃이 예쁘게 폈다 - 이것은 설명이다.

석류꽃이 불덩이처럼 이글이글한 것이 그늘진 마당을 밝히고 있다 - 이것은 감각이다. 어떻게 화려하다는 표출이다.

 

밝든 어둡든, 차든 덥든, 슬프든 즐겁든, '어떻게 의식'이 활동하지 않고서는 그 진정한 맛과 경지가 표현되지 않는다

'어떻게'를 알려면 먼저 느껴야 한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다섯 가지 신겨이 척후병처럼 날쌔고 자세하게 관찰해야 한다.

감각은 언제든지 신경을 갖고 표현해야 한다.

 

- 빗방울을 시름없이 들여다보는 겨를에 나의 체중이 희한히 가벼야웁고 슬퍼지는 것이다. 설령 누가 나의 죽지를 핀으로 창살에 꽂아둘지라도 그대로 견길 것이리라 - 정지용의 '비'

 

얼마나 예리한 신경인가. 대상의 진실은 날카로운 촉각이 아니고는 냄새도 맡지 못한다. 그냥 외워둔 지식이나 개념에서 단어를 뽑아 유창하게 늘어놓은 글에선 이처럼 이전 사람들이 미처 발현하지 못한 새로움이 절대로 지적되지 않는다.

 

눈이 희다는 것은 우리가 머릿속에 기억해 넣은 개념, 지식이다.

그것만으로는 검은 옷은 검다, 눈 온 벌판은 희다, 밖에 더 쓰지 못한다.

이는 맛이 없는 글, 정신이 들지 않은 글이다. 주관이 들지 않은 글이ㅏ. 눈이 흰 줄은 누구나 다 아는 지식이기에.

 

개념이나 지식으로만 글을 써서는 안된다. 눈이 희다거나 불이 뜨겁다는 개념, 지식은 다 내버려도 좋다.

눈이 한 벌판 가득히 덮였으니 보기에 어떠한가. 흰 눈이 그렇게 온 벌판을 덮어놓았으니 보기에 어떠하냐, 어떤 정서가 일어나느냐, 즉 눈 덮인 벌판에 대한 느낌이 어떠하냐, 그 느껴지는 바를 적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