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때 광화문을 철거하는 것을 반대하는 등 일본인이면서도 우리나라 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이 땅의 문화재를 보존하는 데 큰 기여를 한 것으로 유명한 ‘야나기 무네요시’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일본 민예 운동의 중심인물로서 뛰어난 종교 철학자였던 그의 글을 읽다가 진정한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자세에 대한 인상적인 대목을 만났습니다.
“보지 않고 아는 사람은 신비를 모른다. 가령 미(美)의 내용에 대해 상당한 지식이 있다고 해서 그가 말하는 것이 과연 미일까? 분명하게 정의할 수 있는 미는 과연 깊은 미일까? 별것 아닌 미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일까? 미학자는 미학에서 그의 지식을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된다. 아니, 그게 아니다. 아는 것에서 보는 것을 이끌어 내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본말 전도이기 때문이다”(『야나기 무네요시의 민예, 마음, 사람』에서).
그는 무엇보다 ‘아는 것으로 보는 것을 대신하려고’ 하는 것을 경계합니다. 위대한 예술 작품이나 자연의 아름다움을 진정 만나고 싶다면 그것에 관해 말하기 이전에 그것이 우리에게 속삭이도록 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미적 인식에 대한 그의 통찰은 말씀의 강생이라는 신앙의 깊은 신비와 진리를 깨닫고자 애쓰며 대림 시기를 지내는 우리에게 큰 가르침이 됩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지식에 따라 예측하고 판단함으로써 진리를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의 빛은 언제나 ‘자신보다 더 큰’ 신비에서부터 나옵니다. 우리는 가만히 그 앞에 머물러야 합니다. 너무도 찬란한 ‘진리의 빛’은 어둠에 익숙한 우리를 눈멀게 합니다. 인내와 갈망으로 빛이 우리의 눈을 열어 주는 시간을 침묵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마침내 빛이 우리의 눈을 열어 주어 강생의 진리를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가 구원의 신비 안에 살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2014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에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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