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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죽음 (김기림 시인의 추도문 중)

언제나봄 본계 2014. 1. 23. 22:20

상은 필시 죽음에게 진 것은 아니리라. 상은 제 육체의 마지막 조각까지라도 손수 갈아서 없애고 사라진 것이리라.

상은 오늘의 환경과 종족과 무지 속에 두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천재였다. 상은 한 번도 잉크로 시를 쓴 일은 없다.

상의 시에는 언제든지 상의 피가 임리하다.

그는 스스로 제 혈관을 짜서 '시대의 혈서'를 쓴 것이다. 그는 현대라는 커다란 파선에서 떨어져 표랑하던 너무나 처참한 선체 조각이었다.

다방 N 등의자에 기대앉아 흐릿한 담배연기 저편에 반나마 취해서 몽롱한 상의 얼굴에서 나는 언제고 '현대의비극'을 느끼고 소름쳤다.

약간의 해학과 야유와 독설이 섞여서 더듬더듬 떨어져 나오는 그의 잡담 속에는 오늘의 문명의 깨어진 메커니즘이 엉클려 있었다.

빠리에서 문화옹호를 위한 작가대회가 있었을 때 내가 만난 작가나 시인 가운데서 가장 흥분한 것도 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