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여름,자유여행)/런던

테이트모던 관람3 (엔디워홀~ 그리고 모네!) 제5관 + 3관을 관람하다.

언제나봄 본계 2011. 7. 7. 23:08

테이트 모던 5관을 계속 관람중입니다.

아하. 이제 서서히 현대미술의 디자인적 측면이 강조된 작품들이 등장하는군요.^^

1931년 영국에서 태어난 Bridget Riley의 작품입니다. 그녀는 유명한 옵티컬 아트파인데요, 옵티컬 아트란 말 그대로 시각적 예술의 총칭을 의미합니다. 즉 시각적인 착각을 일으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작품을 만드는 거죠.

20세기 중엽에 등장한 이 옵아트는 일명 '망막의 마술'이라고도 하죠.

브릿리 릴리는 처음 옵아트 전시회를 연 초창기 멤버의 한 사람입니다. 당시 전시회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놀라웠습니다.

그림을 가까이보려해도 자꾸 진동이 느껴져서 오랫동안 바라볼 수 없었고, 명동가 동일한 보색을 배치시켜 눈이 긴장하는 기가막힌 상황을 신기하게 경험했던 것입니다. 어찌보면 그림을 오랫동안 바라볼 수 없게 만듦으로써 그림에 대한 감상자의 감상을 철저히 배제시키고 그 순수성에 한번 빠져보라는 의미가 아닐런지.. 전 옵아트를 그렇게 해석해봅니다.^^

 

 

 

오우! 오우! 오우!

옵아트 관람을 마치고 나서 관람관 모퉁이를 도는 순간 또한번 놀랍니다!

바로 앤디워홀의 초상화가 딱하니 버티고 서있군요!

1987년 사망한 그가 무척 가까운 동시대의 사람으로 느껴집니다.

엔디 워홀은 팝아트의 최고봉이라 불리죠^^

그 한사람이 전세계에 끼친 영향이 얼마나 막강합니까. 그의 디자인 세계를 반영한 시계와 작품등등..

심지어 요즘은 삼성과 애플이 앤디워홀의 스마트폰 케이스의 저작권을 두고 전쟁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훗.

엔디워홀은 미술가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영화제작일도 했습니다.

팝아트란 전통적인 서구미술에 역행하기 위해 시작된 시각미술 운동이라고 하죠.

그의 팝아트가 유명하고 선풍적인 이유는 현대미술의 철학을 바꿔버린데 있습니다.

대중적이고 일상적인 소재들을 예술에 끌어들여, 획일적이고 소모적인 현대를 위트있게 비판하고 있으니까요^^

그의 사후에도 논란은 뜨겁습니다.

그는 위대한 예술가다, 아니다 그는 상업적 디자이너일뿐이다.

하지만 체코슬로바키아의 광부아버지를 따라 이민와서 미국에서 성공한 그는, 사실 늘 순수미술을 동경했다고 하네요.

앤디 워홀은 자신의 사진을 찍은 후, 특별한 자신만의 현상을 요구했습니다. 이 사진을 잘 보시면, 명암이나 대비같은것들이 전연 보이지 않고 오로지 그 자신만의 붉은 얼굴이 드러나보이죠. 앤디워홀은 사진은 어차피 내면을 드러내주는 것이 아닌, 외피(껍질)이라고만 했습니다.

전 웬지 앤디워홀의 이 사진을 보면서 몹시 슬퍼지려고 하네요..

 

 

자, 이제 5관 관람을 끝내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층 내려옵니다.

오, 이곳에 무지엽서가 있군요. 이 엽서에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린후, 통에 넣으면, 매달 추첨을 해서 작품을 전시해준다고 합니다.

역시 이런곳은 체험학습 온 학생들의 관심이 높군요^^

우리나라 미술관도 이런 이벤트를 펼치면 아주 기발하고 재미날 것 같습니다.

 

 

 

자, 이제 4관을 지나쳐서(4관은 보통 특별전시를 하는지라, 유료관람이라고 하네요)

한층, 더 내려와서 3관으로 들어갑니다. 3관!! 제가 이곳을 제일 마지막에 관람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모네의작품이 있거든요! 그 작품은 오랜시간 한참동안 바라볼 예정입니다.

 

3관에 들어서자마 벽을 따라 길게 그려진 현대회화 한편이 보이는군요.

칸딘스키 작품이었는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긴가 민가 싶군요..

어쨌든, 붓에 묻은 물감을 뿌리고 그리며 그린 그림이죠. 하.. 이게 누구작품이었더라.. 우리 중고등학교시절 미술책에도 나오는 작품인데 말이죠..ㅜㅜ

어쨌든 이 작품을 빠르게 지나쳐 안으로 안으로 계속 들어갑니다.

정말 제가 보고 싶어하는 바로 그 그림!!

 

네! 바로 이 작품! 모네의 '수련'입니다!

클라우드 모네(1840~1926년)는 프랑스에서 태어난 위대한 화가입니다.

이 작품 수련은 1916년 그려졌습니다. 그림에 그려진 연못은 파리 북서쪽, 지베르니라는 곳 모네의 집에 있는 연못입니다.

그는 1893년부터 자신의 집안에 아름다운 연못을 조성한 이후, 그 모습을 그린 그림을 무려 250여 편 남깁니다.

하여, 모네의 수련은 수련연작이라고 해서, 세계 곳곳의 대 미술관에 여러가지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빛의화가이자 인상파였던 모네는 빛을 매우 중요시했습니다. 그래서 한번 붓을 잡으면 반드시 그날 거기서 완성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그림은 70세 이후 점점 색감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백내장 때문이죠. 이 그림 역시도 백내장이 발병한 시기에 그려진 그림입니다. 모네의 수련연작은 1919년 마지막 작품인데요, 최근 소더비 경매에서 834억에 호가되었습니다.

아무튼.. 모네 그림의 아름다움은 가격이 아니라 바로 그림 그안에 숨겨진 부드러움에 있는듯 싶습니다.

그의 그림에는 그의 마음이 드러납니다.

세계대전으로 피폐해진 파리의 시민들을 위해 수련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모네.

설사 그런 배경을 몰라도 수련 연작앞에 서면 절로 겸허해지고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전 이곳 그림이 걸린 전시관 바닥에 앉아, 모네 그림을 한참동안 넋을 놓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모든 상처들을 치유받았지요.

모네의 수련연작을, 나중에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가서도 감상했었는데요, 그때도 역시 한참동안 또 다른 감회를 느꼈습니다.

(오르세 미술관 관람이야기는 파리편에서 다시 알려드리죠^^)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네의 수련앞에서 한참을 보낸 후 정신을 차려봅니다.

그리고 아쉽고 또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려는 순간, 한폭의 강렬한 유화앞에서 다시 발걸음을 멈춥니다.

뭐랄까요..

방금전 모네의 그림을 통해, 고성소에서 편안히 올라온 기분이라면, 이 그림을 보는 순간, 갑자기 밑바닥 저편에 감췄던 열정이 확 불을 지폈다고나 할까요.

 

바로 이 그림! 러시아에서 태어난 작가 칸딘스키(1866~1944)의 '스타른베르그의 호수'입니다!

칸딘스키가 점,선,면의 기하학적 무늬를 이용한 추상화가로만 알고있던 저로서는 이 작품을 보고 눈을 다시 비벼봅니다.

정말 칸딘스키 작품이 맞나하고요. 하지만 칸딘스키도 역시 풍경과 인물등을 소재로 많은 유화를 남긴후, 추상파의 창시자가 되었습니다.

독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교수이기도 했던 그는 결국, 나치의 압제를 피해 프랑스로 망명합니다.

실제 그의 사진을 검색해보시면 동그란 안경을 낀 전형적인 교수님(학자)의 모습을 볼 수 있죠^^

 

 

다음 작품은 독일의 표현주의 화가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1880~1938)입니다.

작품명은 '모리츠베르크의 목욕하는 사람들'입니다.

키르히너는 표현주의 화가들인 다리파를 함께 이끈 인물인데요, 그의 그림을 잘보시면, 인물들 사이의 긴장감과 묘한 에로티시즘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키르히너에게 미술이란, 직접적으로 강렬하게 내면을 표현하는 것이었죠. 그림에서 그런 느낌을 받으실 수 있죠?^^

키르히너가 가장 영향받았던 화가는 누구일까요?

네, 맞습니다. 바로 고흐와 뭉크입니다! 강렬한 색채를 표현한 인상파의 대표적화가 두 분이죠.

사실 키르히의 대표작은 베를린의 거리풍경, 이라는 작품입니다. 마네의 점심과 살짝 비슷한 그림인데요, 한번 검색해보시면 누구나 본 적이 있다고 느끼실 겁니다. 그의 여타 작품들은 인물들을 각지게 그리고, 선정적인것에 집착하는 성향이 강해집니다.

결국 그는 나치들에게 퇴폐적 화가,라며 탄압을 받게되는데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도 건강하지 못했던 그는, 나치의 탄압에 절망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열정적인 화가들은.. 고흐도 그렇듯이.. 스스로 자멸하는 경우가 많군요.. 안타깝게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