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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터널 애니멀스 -> 직설접 화법의 부담스러움.

언제나봄 본계 2017. 3. 30. 01:04

이 영화에 대해, 호불호가 갈릴 것이는 평이 많다.

갈릴까 과연?

대부분 불호가 아닐지.

이 영화는 쉽지 않고 그래서 불편하다.

 관객에게 해석을 요구하고 변주에 대한 의미부여를 강제로 요구하는 느낌이다.

때로는 영상을 비틀고 겹치기 하면서.

그런데 이런 테크닉들이 자칫, '나는 의미가 있어. 잘 해석해봐'라고 억지요구를 하는 것처럼 불편할 때가 있다.

생각해볼 일이다.


첫 인트로를 올리고 싶지만, 19금에 걸릴까 싶어 올리지 못한다.

하지만 영화 전체를 통틀어서 내게는 가장 통렬한 장면이었다.

불합리하고 부당하고 공격적으로 보이는 첫 인트로는.

영화속 여주인공(에이미 아담스)이 완전한 쓰레기, 라고 말하지만, 내게는 가식이나 허황이 없는 자유로운 조나단 리빙스턴(갈매기의 꿈, 참고)처럼 보였다.


자, 여주인공 수잔부터 살펴보자.

그녀는 부유하다. 잘난 남편을 가졌다. 그 남편분이 버젓이 바람을 피는 것을 알면서 용납한다. 따지지 않는다.

예술품을 사들이고 되팔고 쇼를 기획하면서 돈을 모으는 여자다.

의미가 없다는 걸 알아도 그냥 가야 하는 게 우리라고, 그녀의 지인은 충고한다.

왜?

세상은 어차피 부조리하니까. 인생은 어차피 부조리하니까.

-> 첫번째로 걸그적 거리는 대사다.

-> 영화의 대사에 '세상이 부조리하다'라는 말을 넣었다고 해서, 이 영화가 부조리를 파헤치는 영화라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오바지 않은가?

여기서부터 이 영화는 '그럴싸하게 포장을 해줄 테니 너희들이 의미를 부여해봐'라는 강요로 나를 이끌기 시작한다.

아주 부담스럽고 불편한 여행의 시작이다.


수잔에게 한권의 소설이 도착한다. 자신이 버린 전남편 에드워드가 '자신을 위해 쓴 책'이다.

제목은 녹터널 애니멀스. 애니멀이 아니고 애니멀스다.

사실 야행성 동물, 이라는 이 단어는 수잔의 젊은시절 별명이다.

잠들지 않는, 잠들지 못하는, 생각이 많은 여자 수잔.

그런데 과연 수잔만을 뜻할까.


수잔의 배신으로 인해 19녀간을 잠들지 못했을 인물, 애드워드.

그도 어쩌면 복수를 꿈꾸며 잠들지 못했을 야행성 동물일터.

물론 이도 나의 추측이다.

영화는 이처럼 직설적 화법 or 불성실한 패스워드로 자꾸 내 머릿속을 아프게 만들어준다.


아, 아래 장면은 소설속의 토니라는 주인공의 모습이다.

우연히 일어난 고속도로 사고에서, 아내와 딸은 강도들에게 납치되고, 긴급한 상황에서 저만 혼자 살아남은 토니.

어쩌면 19년 전 수잔이 애드워드를 버린 것도, 청천벽력같은 우연한 사고처럼, 그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것도 물론 나의 추측이다.


또 나왔다. 직설적 테크닉.

리벤지. 복수를 의미한다.

수잔 자신이 구입한 작품이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그녀.

애드워드가 보낸 소설이 그녀를 향한 복수라고, 감독이 손가락으로 짚어주는 것 같아 영 부담스럽다.

이 단어의 위력만큼, 멋진 복수극이 시작될 것이라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다시 그 소설 속.

토니를 도와주는 보안관. 왜 이리 적극적으로 범인을 잡으려고 애쓰나 싶을 정도로 악착같이 범인을 추격한다.

이 보안관은 죽어가고 있다. 폐암말기다. 그의 말처럼, 그는 잃을 게 없어서 살인범을 불법적으로 죽이는 것도 가능하다.

이처럼 토니를 도와주는 존재는 죽어가는 존재다.

어쩌면 현실의 수잔이 애드워드를 버렸을 때, 죽어가는 존재, 아니 죽음이라는 것만이 애드워드 곁을 맴돌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이것 또한 나의 추측이다.


19년전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애드워는 19년이 지난 지금 소설을 써서, 전 와이프에게 복수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아 고작 이것인가, 이게 다인가. 라는 의문부호를 던지게 만드는 장면.

사랑하지만 너처럼 현실감각 없고 무능력한 남자 곁에 있기 싫다, 라는 대사를 수잔이 내뿜은 것도 아닌데,

사랑을 버리고 간 것이, 그녀가 벌받아야 할 이유가 될까? 왜 수잔이 복수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 라는 의문...


다시 소설속. 아내와 딸을 강간하고 죽인 놈에게 토니는 총을 겨눈다.

놈은 말한다. '넌 약해빠져서 총을 쏠 수 없을 것이다.' 그 말에 토니는 방아쇠를 당겨버린다.

사실 현실에서 이 말은 '수잔이' 애드워드에게 했던 말이다.

수잔은 그 말을 한적 없다고 하지만, 애드워드는 기억한다.

현실의 애드워드는 어쩌면 그 말 때문에 수잔을 죽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글에 대해 연약하다고 폄하한 수잔의 말 한마디가 고통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소설 속에서 수잔을 대변하는 강간범을 총으로 쏜 것이다, 라고 이 영화는 나로 하여금 그렇게 평가해주기를 바란다, 노골적으로.


그렇다해도 소설 속의 토니의 응징은 공감이 가지만.


그리고 스스로의 자살도 일부 공감이 가지만.


또, 가족을 잃고 모든 것을 파괴당한 소설속 주인공에게 절대 공감하는 수잔에게도 일부 공감은 가지만.


19년 만에 설레게 단장하고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에 나가, 전남편인 자기를 기다리는 이 여자를 바람맞히는 것이


과연 복수가 될까.

아니, 왜 이 여자는 애드워드의 복수의 대상이어야 하나, 라는 의문부호는 여전히 가슴에 남는다.

 장소에 나타나지 않는 에드워드 입장에서 복수의 이유는

-자신을 버리고 떠났고

-자신의 글을 약하다고 폄하했다는 것...


영화에서 이후 수잔의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이렇게 추측해볼 수는 있다.

만약 이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책 앞면에 수잔을 위해, 라는 서명을 본 독자들이 설명을 요구할 때

무수히 많은 루머들이 양산되어

그 여파가 수잔에게 미칠 수는 있을터.

그런게 복수가 될 수는 있겠지만

복수하는 이유는 여전히 내게 부당하게 느껴지는 이 거리감은 어찌할까.


하여 별점은 10점 만점에 6점 -> 5점을 넘긴 이유는 연출가가 갖고 있는 예술적 감각들에 대한 찬탄+ 경이로운 첫장면.

(참고로 첫장면은, 소설 속 강간범이 단골로 가는 술집 여자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4점 이유는 -> 두 개의 극을 변주한다고 해서, 그 의미가 배가 되지는 않는다. 두 개의 극이 한 몸처럼 픽스되기 위해서는 맥락이 아주 중요하다.

이 영화는 마치, 이미 누군가 다 까먹어버린 빈 밤송이를 괜히 고생해서 득템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