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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쓰는 말이 아니라, 글 속에 나오는 인물들이 생활속에서 쓰는 말일때, 글이 진실해진다

언제나봄 본계 2014. 2. 6. 23:35

여섯 사람이 청석골서 떠나던 날 임진나루 못 미쳐 동자원 와서 자고 이튿날 식전 나룻가에 왔을 때 강 건너의 배가 좀처럼 오지 아니하여 사장에를 앉아서 한동안 늘어지게 쉬었다. 기다리기 진력이 날 지경에 배가 겨우 건너와서 타기까지 하였으나 사공이 행인 더 오기를 바라고 배를 띄우지 아니하여 서림이가

"여보, 고만 갑시다"

하고 재촉하니 사공은 못 들은 체하고 있었다.

"우리 여섯이 선가를 특별 후히 줄 테니 어서 띄우"

사공이 서림이를 흘깃 돌아보며

"얼마나 줄라구 특별히 준다우"

하고 물었다.

"내가 선가 선셈하지"

서림이가 자기 짐에서 서총대무명 한 필을 꺼내서

"자 이거 선가루 받으우"

하고 사공을 주었다. 서총대무명이 백목만 못한 낮은 무명이지만 그때 시세가 한 필 가지고 쌀을 서너 말 바꿀 수 있었다. 사공이 하루 종일 배빌하여도 쌀서 말거리가 생길지 말지 한 것을 한번에 받았으니 입이 딱 벌어져야 옳건만 사공 욕심 보아라 매매교환에 많이 쓰는 닷새무명을

"이거 석 새 아니오"

"부족한 게 아니라 북덕무명이라두 새가 너무 굵단 말이요"

"자, 갑시다"

"네"

사공이 삿대를 질렀다. 배가 깊은 물에 나와서 삿대를 누여놓고 노질을 시작한 뒤 사공은 서림이를 보고

"멀리 벌이들 나가시우"

하고 물어서

"그렇소"

서림이가 대답하니

"벌이를 잘해서 우리 같은 놈두 좀 먹여 살리시구려"

말하고 껄껄 웃었다.

 

- 홍명희의 '임꺽정'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