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 writer
표현의 구체력이 그 얼마나 강한가 (이태준 선생님의 문장강화중)
언제나봄 본계
2014. 1. 14. 20:16
양복을 주섬주섬 떼어 입고 안방으로 나오려니까 아씨는 그저 뾰루퉁하여 경대 앞에 앉아서 열심으로 가름자를 타고 있는 모양이다.
"오늘은 언제 들어오시랴우? 회사 시간이 늦어도 좀 들러 오시지"
돌려다도 보지 않고 연해 바가지를 긁다가 남편이 안방문을 열려는 것을 거울 속으로 보고 입을 잽싸게 놀린다.
"그 빌어먹을 전화. 내 이따 떼어버려야. 기생년하구 새벽부터 이야기 하라구 옷을 잽혀가며 매었드람? 참 기가 막혀!... 그럴 테면 마루에 매지 말구 아주 저 방에 매지"
하며 구석방을 돌려보다가 남편과 눈이 마주치자 외면을 하더니 빤드름한 머리밑에 빨간 자름댕기를 감아서 뽀얀 오른편 볼을 잘록 눌러 입에 물고 곁눈으로 거울을 들여다보며 머리를 땋기 시작한다. 주인은 한참 바라보다가
"느느니 말솜씨로군!"
하고 방 밖으로 휙 나오다가 좌우 북상 사이에 달린 전화통을 건너다보았다. 네모반듯한 나무갑 위헤 나란히 얹힌 백통빛 새 종 두 개는 젊은 내외의 말다툼에 놀란 고양이 눈같이 커다랗게 빤짝한다.
- 염상섭의 '전화'
* 소리가 모두 그대로들이어서 새겨야 할 말이나 구절이 없다. 생활어 그대로기 때문에 현실광경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