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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1994 최종회 리뷰 '정우에서 쓰레기로, 그리고 재준으로 응답받다'

언제나봄 본계 2013. 12. 29. 03:10

아!

21회. 마지막 방송이 끝났지만, 시리도록 그리운 이야기로 가슴에 남을 최종회이다.

지난 18.19,20회를 통해 보여준 칠봉의 짝사랑에 대해 논란과 사이다 VS 나레기의 설전도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칠봉이도 기억해줘야한다. 그도 20대의 미성숙한 사랑을 통해 성장해갔던 인물로 기억해주기 바란다.

 

또한 칠봉에게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한다는 나정에 대한 논란도 있었지만,

1회부터 최종회까지, 나정은 단 한번도 칠봉의 마음을 받아준 적이 없다. 그녀의 눈길은 언제나 쓰렉을 향했고 (눈빛이 다르다는 윤진의 8회 대사를 보라), 그가 잠들때조차 그의 등을 지켜보는 바래기였으며(3회 초반부), 술에 취해 파트라슈가 되어도 쓰렉에 대한 입술깨물기를 할만큼 온전히 한 마음이었다. 우리는 안다. 그녀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그녀는 분명 말했다. '나의 꿈은 오빠와 결혼하는 것이었다, 라고.

 

그래, 그래도 그녀가 칠봉을 밀어내지 못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다만 지나친 배려. 20년간 오빠같은 사람을 짝사랑해오면서, 겨우 술이 들어가야 눈을 찡긋하며 그를 똑바로 쳐다볼 수 있었던 그녀이기에, 자신만 보는 칠봉에 대한 짝사랑을 단칼로 밀어내지 못한 0.0001%의 죄. 배.려. 그게 전부일터.

후일 18~20회 사이 나레기의 결별이유가 되기도 한 이 복선의 단어, 배. 려. 다.

 

자, 우리는 예상했다. 최종회가 어떻게 풀릴지.

칠봉이 부상을 당했고, 나정이 간호하고, 쓰레기(아니 이제부터 그를 당당히 김재준이라 부르자. 그가 이 이름을 찾기까지 얼마나 험난한 여정을 사슴처럼 견뎌왔던가. 또한 정우라는 배우가 12년의 포텐을 발산하고 받아야 할 응당 마땅한 그 이름.

그렇다. 섬세한 배우 정우, 그리고 아직도 우리가 보내지 못한 쓰레기, 그는 그 이름을 받을만하다.)가 고난을 겪고

(시청자들이 미리 예측했던 것은 아버지의 죽음이나 수술, 그러나 결과는 과거 어머니의 모친상과 그로 인한 결별이었다)

그리고 다시 나정과 재회를 하리라는 수순이었다.

현명한 시청자들은 김재준의 입에서 '사랑한다'는 고백이 아직 나오지 않았기에,

21회 최종회에서 '사랑한다'는 고백이 멋지게 나오리라 기대까지 했다.

 

그렇다. 작가는 우리에게 응답했다.

막장과 갈등과 끝갈데 없는 모함에 길들여져, 마치 대그룹처럼 줄지어 몰려가는 공중파 방송들의 간판 드라마들의 트루기를 보기좋게 비웃고는, 시청자들이 원하는 갈등없는 드라마!(분명히 드라마라고 말한다, 우리는 감동받고 웃고 울었기 때문이다.)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얼마나 설레게, 얼마나 절절하게, 얼마나 뜨겁게 만들었나!

 

 

기억하는가. 20회에서 그들의 결별이유를.

커피집에 마주앉아, 김이 나는 커피잔을 놓고,

재준은 반복해서 말한다. '괜찮아... 오빠가 미안해'

그러나 그 말은 나정이 듣고 싶은 말이 아니었다. 오빠가 미안하다,는 지나친 배려가, 결국 나정을 밀어냈기 때문이다.

재준은 그 말로 자신의 모친상을 혼자 감내하고, 나정의 빈자리를 채우려 들지 않았다. 

재준은 고집스럽게 나정에게 오빠이고만 싶었다.

든든한 산, 단호한 결정을 내리는 순간(15화 후반부의 허락받기)에도 나정을 밖으로 내보내고, 자신이 혼자서 오롯이 나정을 여자로 좋아한다고 허락을 구해내는, 그는 그렇게 홀로 세상에 맞서고, 철저히 나정에게 인형의 기사이고만 싶었던 존재였다.

그런 그가 응답했다. 나정이 그토록 바라던 그 말.. 아.프.다.

 

우리가 보아온 재준은 나정이가 아픈것을 제일 먼저 알아채고 보듬어만 주던 존재였다. (4화 니 아픈데?)

그러나 정작 자신은 금수와도 같아서 썩은 우유를 먹어도 배탈나지 않았고, 똥 한번 싸내면 다시 회복하는 그런 짐승이었다.

그는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빈틈을 보여주지 않는 어른이자, 각별한 나정의 고향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나정에게 단 한번도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내지 못한 존재이기도 했다. (12화 초반부 차안에서 나정이 스킨 안바르냐며 얼굴을 매만질때 그는 움찔 놀란다.)

그렇기에 그들의 사랑은 미성숙한지도 모른다.

아플때까지 사랑해야 (마더 데레사) 우리는 사랑의 의미를 비로소 알 수 있기에.

아직 우리의 쓰렉은 아플때까지 사랑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이제 말한다. 아프다. 사랑해서 아프다. 고. 그리고 재준의 그 문자 한줄은 나정을 이렇게 무너지게 만든다.

 

 

나정은 택시안에서 서럽게 운다. 그러나 정작은 서러운 울음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에 아파서 난생 처음 감기에 걸려, 초죽음 상태에 들어간 재준의 사랑이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토록 응답받고 싶어하던 그답. 그러나 아직은 0.1 % 부족한 그 답.

문을 열어주는 재준의 얼굴을 보는 순간, 여전히 미워지는 그 답.

하지만 재준은 그녀를 보자마자 미친듯이 껴안고 난생처음 그녀앞에서 펑펑 흐느낀다. 

 

 

그리고 이제 두 사람은 무너진다. 오빠로서 사랑을 감내했던 재준도 함께 무너진다.

처음 있는 일이다. 자신이 무너지다니. 도대체 나정의 사랑이 얼마나 컸던가, 그는 비로소 실감하고 느끼고 터뜨린다.

정작 자신은 몸이라도 아팠지만, 나정은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먹방을 하고, 일상을 살고, 일을 해왔건만, 그녀는 정말이지 알고보면 재준보다 더 큰 산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토록 원하던 재준의 품에서 와르르 무너질 수 밖에.

두 사람이 함께 무너져야 함께 다시 세울 수 있으니까.

 

그순간, 재준은 모든 것을 깨닫는다. 사랑!

목구멍에서 내뱉지 못했던 그 핏덩이.

죽은 친구 훈을 대리했던 아들과 오빠라는 자리, 그리고 사랑하는 여자를 번번히 밀어냈던 그 마음이 커서, 차마 입에 내뱉을 수 없었던 금기의 단어 사랑. 그것이 쏟아져 나온다. 사. 랑. 해.

이토록, 완벽한 사랑고백이 있던가.

가장 처참한 순간에 아이러니하게 드러나는 순도 100프로의 이런 사랑이 있던가.

 

 

그래, 뜨거운 키스는 생략하자. 재준의 입에서 나온 '사.랑.해'라는 세 글자로 충분하지 않은가.

자, 이제 우리는 쓰렉이라는 캐릭터에 비해 연적수준이 다소 떨어져 힐난을 받았던 칠봉이를 정리할 차례다.

그런데 작가는 기막힌 방법을 쓴다.

칠봉이 사랑을 단순화시키는 기법. 그것은 바로 이 말이다.

'선배가 아니라 형이라고 해라' 

 

 

칠봉은 후일을 기약한다, 다음에 형이라고 부르겠다고.

그 순간 재준의 눈에는 살짝 눈물이 고인다. 그에게 모든 청춘은 가족이었기에(빙그레를 치유해준 그의 과정을 보라) 칠봉이라는 한 존재도 소홀히 여길 수 없다. 재준의 사슴같은 눈망울에 비친 칠봉의 모습을 보면 갑자기 슬퍼지는 이유는 그래서이다. 하지만 재준은 재촉하지 않는다. 간단히 넘긴다. '아, 짜증나' 그답다.

 

자, 지금껏 내 글에서 나는 쓰렉이라는 별칭 대신, 이미 재준을 재준이라 불러왔다. 

그러나 재준의 이름을 이처럼 감명깊게 불러줄 수 있을까.

나정은 의국실에 분식집을 차려놓는다. 자신이 평소 싫어했던 순대도 끼워넣는다. 이제 그녀의 사랑은 소위 아픈만큼 커지고 성숙해졌다. 

예전에는 재준에게 받기만 하고, 재준이 그녀의 호불호를 챙겼지만(마시멜로우나 퇴마록), 이제 그녀가 재준의 호불호를 알고 챙긴다.

그리고 우리가 그토록 듣고싶어했던 그 이름.

재.준.오.빠. 라고 부른다.

 

 

나는 그 순간 재준의 얼굴을 포착해본다.

여지껏 쓰렉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그였다. 20회동안 단 한번도 자신의 이름을 불리우지 못했던 존재.

그래서 그는 나정의 오빠이거나, 우리 아들이거나, 김쌤이거나, 쓰렉이라는 여러이름으로 가면을 쓴 채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제 나정을 통해, 그는 드디어 의미있는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그의 이름 김.재.준, 이라는 명패가 포착된 순간이 그토록 설레었던 것이다.

 

 

의사가운 속에서 드러난 드디어 그의 이름. 김. 재. 준.

이 드라마의 과도한 남편찾기에 화내고 짜증냈던 우리지만,

어쩌면 연출가가 말한대로 이것은 남편찾기가 아니라, 쓰렉의 이름찾기였는지도 모른다. 정우라는 배우가 12년동안 쌓아온 연기를 마음껏 펼치면서도,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지 못한채 쓰렉이라는 존재가 되어, 웃기고, 장난치고, 울리고, 사랑하고, 아팠던 그 긴 긴 과정을 지나, 드디어 그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응답하게 된 김재준이라는 하나의 남자가 되는 순간이다.

그래서 우리는 응답하라1994를 보내지 아니하고 있다. 재준안에 녹아든 쓰렉, 그 쓰렉안에 녹아든 정우.

응사앓이를 하는 사람들 모두가 공감하는 한 부분일 터.

 

 

자, 이제 그는 응당 웃을 수 있다 이토록 활짝.

더이상 그는 오빠나, 아들이 아니라, 김재준. 나정의 신랑이 되었다.

모든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순간이다. 그러나 이 과정까지는 그만의 숨겨진 또하나의 과거와의 싸움이 있었다.

아, 이 사실이 얼마나 우리를 다시한번 울게 만들었던가.

 

 

여기서 사담. 그대들은 진정, 요즘 10대들 표현을 빌리자면 역대 최강 캐미커플이다.

당신들 눈에는 사랑이 보이는도다. 재준오빠 사.랑.해. 라고 소근거렸던 나정의 마지막 세 글자는 진심이었다. 진.짜.루.

그대들의 연기가 연기가 아닌, 우리의 추억으로 남게 된 이유다. 진짜루 94년의 사랑과 삶을 살아준 그대들.

오래도록 기억될 배우 정우와 아라의 모습이다.

 

 

아, 여기서 다시 한번 설레게 가보자.

우리는 나정에게 응답한 김재준의 '사.랑.해'를 들었지만.

재준에게 응답한 나정의 '사.랑.해'는 제대로 듣지 못했다. 실상 나정은 좋아한다는 고백을 혼자말로 연습했었다.(8화, 오빠에게 고백하려다 번번히 망설이고 삼키는 부분.) 그나마 그녀의 고백은 첫눈이 오던 날 했던 말. '그거 진짠데'

자, 이제 그녀는 재준에게 응답한다. 분명하고도 단호하게

'재준오빠. 사.랑.해. 진짜루'

 

 

 

재준은 저 미소 그대로 답한다. '안다'

그는 이제 안다, 사랑에 대해서. 힘들때 보듬어주지 못한 지나친 배려가 오해를 낳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는 이제 망설이거나 마음에 말을 담지 않는다. 나정의 사랑고백에 대한 모든 것을 다 안다고 분명히 답한다. 왜냐면 그들은 세상에서 절대로 끊어질 수 없는 인연의 끈에 묶여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이 사랑은 특별하지 않은 사랑이었다(19화 나레기의 이별 나레이션중)가 아니라, 아주 특별한 사랑이라는 것을. 모든 사랑은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 우주에서 유일무이한 특별한 사랑이 된다.

 

 

그렇기에, 일화어머니가 짜주신 장갑은 단순한 장갑이 아니라, 우주안에서 일어났던 아주 특별하고 각별한 사랑이야기였다.

그것은 슬픈동화로 시작되었으나, 이제는 슬픈 모티브가 사랑을 지탱해줄 탱탱한 끈이 되어줄 것이라는 사실을.

여기서, 나는 또 하나의 감동적 씬을 간과할 수가 없었다. 성 동 일. 

 

 

성코치. 그는 누구보다 불안감이 많은 존재다. 차마 죽은 아들 훈의 이름을 부르지 못할만큼(20회)

아직도 죽은 훈의 이름을 부르려면 백만배의 용기가 필요하고 천만배의 호흡이 필요하다.

그런 그에게 아들을 대신한 재준. 그런데 재준을 잃어야했다!

딸과 아들의 연애가 얼마나 위태할지, 삶에서 20대 사랑의 불완전함을 경험해본 그로서는 처음부터 재준과 나정의 사랑을 반대했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사랑을 지켜보던 그에게 청천벽력같은 일이 생겼다. 재준과 나정의 결별! 그는 아들을 또 잃어야했다.(20화 병원씬에서). 그런데 나정과 재준은 다시 사랑을 시작하겠단다. 그리고 결혼을 하겠단다. 결혼까지 왔다가 결별했던 이 아이들이 또 다시 무슨짓을 저지를지 성코치는 불안하다. 두번씩이나 감당할 용기는 없다. 그래서 그는 눈물을 머금고 말한다. 니들은 내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라고! 

 

아, 아버지의 글썽이는 모습도 모자라서, 작가는 나에게 일화어머니의 과거를 회상케한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또 한번 울게된다. 재준이는 어른이다.. 그넘 마음속에는 영감할머니가 앉았다.. 그랬구나 그랬구나!

 

 

우리는 다시 15화로 회귀한다. 쓰렉이라는 존재로 나정과의 교재를 허락받기 위해

검은 양복을 빼입고 무릎꿇고 죄인처럼 앉았다가,

성코치에게 팽당했던 그 회.

그러나 아버지가 일어나고 나간 뒤, 일화어머니를 통해, 우리는 쓰렉의 20여년 간의 삶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순간이다.

신경외과를 간다는 말에, 일화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이고 마침내 우리가 몰랐던 질문을 던진다.

'훈이 때문이가?'

 

 

그제서야 우리는 훈이의 죽음의 원인이 뇌종양임을, 그 과정을 어린 쓰렉이가 지켜봤음을 알게된다. 아, 이 순간 나는 가슴이 또 얼마나 먹먹했던가. 이 짧은 대화를 통해, 갑자기 우리는 선명하게 쓰렉의 삶이 안타까워진다. 무려 20년간 그는 공부와 사투를 벌였고, 의과에서 장학생 자리를 놓치지 않을만큼 고집스럽게 의학에 몰두했다. 병원에서 만난 아이들은 지나치지 못해 늘 뒤돌아 장난을 쳤고 (5화 간암으로 죽어가는 어머니의 두 형제 이야기, 12화 만두사러 간 아버지와 아이 삼풍백화점 이야기) 자신의 지적 수준을 아이와 비슷하다며 스스로 폄하까지 한 그.

그렇다, 그의 마음속에는 죽어가는 훈 곁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응분이 쌓이고, 그것이 재준이라는 이름을 잃게 만들고, 지금껏 의사의 길을 걷게 만든 모토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재준은 하얀 거짓말을 한다. 누구나 다 답을 눈치채는 그 거짓말. 그렁한 눈빛에 드러나는 거짓말.

 

 

아닙니다 어머이. 지가 좋아서 신경외과 가는 겁니다.

일화어머니의 회상씬은 쓰레기가 재준이라는 이름을 잃게된 모든 이유를 설명해주는 보석같은 씬이다.

 

자, 이제 우리는 응답하라 1994와 이별할 준비를 할 때가 되었다.

그것은 바로 밥상앞에서이다.

 

 

때로는 우리에게 배꼽을 잡고 웃게 만들었던 우~~ 대형잡채...

그러나, 이제 우리는 대형잡채와 산더미같은 전 앞에서 웃을 수가 없다. 자꾸 눈물이 나와서. 이것이 마지막 식사임을 알기에. 그리고. 

 

 

우리가 지난 몇달간 그토록 사랑했던 신촌하숙의 어느 청춘들.

그것은 엑스세대였던 나의 이야기이자,

'뜨겁고 순수했던, 시리도록 그리운 그 시절'에 대한 마지막 간판이기에.

그래서 삼천포가 마지막으로 던진 질문은 더욱 절절히 가슴에 남는다.

'들리는가. 들리면 응답하라.나의 90년대여-'

 

아. 다시 돌아가고 싶다.